12시 찍고 자려고 했더니 갑자기 뜨는 이 뉴스에 텐션 급저하.
평소에는 부러 점잔을 빼며 중의적으로 비틀어대는 문체를 쓰지만 그럴 기력도 없으니 그냥 키보드 가는대로.
......그러니까, 왜, 그렇게 의료계에서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는데도.
왜 꼭 막장을 봐야 포커스가 돌아가나.
의료계에서 수가를 현실화해달라고 하면 재정부담이 늘어날 것을 염려한 반대파들은 슬그머니 뉴스 풀어 '돈 더 달라고 의사들이 생떼쓴다'고 언론플레이나 하고, 보건재정 파탄나도 '돈 더 달라고 떼쓰는 의사'의 책임으로만 돌리며 보건계열 구조조정 노력은 손톱만큼도 없었지.
의료계의 비명을 제대로 들을 생각 하고 11년 이상 수련한 지식과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부여했어봐라.(이게 바로 '수가 현실화'다) 반대파들이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리베이트나 받는 부패한 악덕 의사'들이 생길 껀덕지나 있었을까.
결국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홍보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공급자만 족쳐 어떻게든 값을 내려온 업보를 그대로 받는거다. 위 사건은 의사들이 국민들에게 앙심을 품고 일부러 태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저런 기술들을 배울 의지를 꺾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적절한 진료를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없게 만든 의료시스템 설계자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환자진료의 보람을 느끼는 대신 '손가락 하나 이어붙이지 못하는 바보들'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선택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자. 저 돈 받고 손가락 이으라고 윽박지르고 싶나? 그럼 '능력이 안 되면 전원시켜라'고 정한 의료법을 바꾸면 된다. 이렇게 바꾸면 기술과 인력이 부족하여 다른 병원으로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것이 불법이 되므로, 의사는 찾아온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없다. 그러니 접합수술을 배워놓아야 한다. 환자도 좋고 보험공단도 좋다. 의사만 손해보면 되니까
.(주) 이게 지금까지 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해온 일 아니었나?
(주)실제로는 환자도 손해를 본다. 중병에 걸려 찾아간 병원이 그 병을 치료할 기술과 장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전원이 안 되기 때문에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못 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적절한 장비를 구비하지 못한 의사가 책망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 적절한 장비를 구비할 자본력을 가지지 못한 병원은 문을 닫고 거대병원 몇 곳으로 통폐합된다. 의료접근성의 저하는 물론이요, 과잉투자 등으로 한정된 의료자원은 낭비될 것이다. '능력이 안 되면 전원시켜라'는 조항은 환자를 서로 미루는 것을 허용하는, 무능한 의사들을 위한 악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전원시킬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거 다 알고 의사된거 아니냐? 그러니 그냥 당해라.'라는 댓글이 보이네. 저런 시스템이 의사가 원해서 된 것이거나 합의해서 만들어진 거라면야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강제로 만들어졌고 그나마도 계약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수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듣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부에서 '모든 음식점의 음식값은 전부 같아야 하고 음식값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정해야한다. 이익을 위해 더 높게 받거나 손님 유인을 위해 낮게 받으면 처벌한다'고 강제하면 따를 것인가? 의사집단은 따랐다. 따지고 보면 이게 모든 막장테크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이 제도에 찬성한 의사 지도부들은 무슨생각이었을까. 박정희의 총칼이 무서워서 법안에 동의했을까.)
시민단체들에게도 묻는다. 당신들이 의사집단을 개혁대상으로 생각하고 의사의 비리를 전체의 문제로 포장해서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행위는 개혁에 필요한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므로 공감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는 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 의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 것을 간과할 수 없지만 의료계가 분명 이전보다 더 투명하고 건전한 진료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데 일조했음도 또한 인정한다. 이제 그 힘을 제발 좀 의료시스템의 운영자들에게도 좀 써봐라. 보험재정의 4%가 운영비로 나간다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가? 물가상승분과 임금상승분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가인상률은 경제적으로 맞는 계산법인가? 30년 이상 물가상승률 이하로 인상되었던 수가인상률은 적절한가? 수가를 높여달라는 말은 무시하고 자기들이 정한 낮은 수가인상률을 놓고 합의하자고 해놓고, 합의가 안되면 건정심의 결정에 의해 낮은 수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수가결정시스템은 적절한가? 의약분업에 의해 복약지도료나 조제료 등으로 근 2조 이상에 이르는 보험재정 부담이 의약분업 이전에 비하여 새로 생겨났는데, 이런 부담이 '항생제 남용'을 줄인 효용이나 의약분업을 실시함으로써 얻어진 기타 장점에 비해 적절한 기회비용인가? 아니, 애초에 항생제 남용을 막은 것이 의약분업 때문 맞나? 파헤치면 몇날 며칠 우려먹을 수 있는 떡밥 블루오션이 이 바닥에 있다. 의사들이 주장하면 또 이전과 같이 '의사놈들 돈 더 벌어먹으려고 저런 핑계댄다'는 소리밖에 못 듣고 국민들의 비난 앞에 묻힐 것 같으니 시민단체에서 관심좀 가져주시라. 시민단체에서 캐고 캐고 또 캤는데도 '문제 없다'고 하면? 그때는 수긍하겠다. 저런 화두가 문제없다고 결정된 나라에서 나도 의사할 생각 없다. (문제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직업을 내놓겠다는 말을 두려움없이 할 수 있다.)
오늘만큼 격하게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난 의료민영화를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당연지정제 폐지 움직임을 당연가입제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조건부로 찬성한다. 전자는 공보험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고, 후자는 공보험 체계에서 제공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만들 가능성을 열기 때문이다. 양자 모두 공보험의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화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양립할 수 있다. 나는 공보험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공보험을 포기하자는 말을 지금까지 하지 않아왔고, 그래서 의료민영화를 반대했다. 하지만 공보험 운영 시스템이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심장수술, 산부인과 수술까지 저 짝 나서 원정진료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중환자실이나 각종 외과수술처럼 투입되는 비용과 노력보다 받는 돈이 더 적은 상황을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내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극렬한 민영화 찬성자가 되겠다. 공영화 정책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경전이 아니다.
보론 : 결국 돈이다. 보건복지분야 투자비율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적은 나라임에도 비슷하거나 약간 떨어지는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소득에서 외국만큼만 세금이 나가면 뭔들 못하겠는가. 하지만......국민과 기업은 임금동결이나 세금인상, 투명납세 등으로 재정을 세우고, 정부는 이를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며 갈등의 당사자가 아닌 중재자가 되는 사회적 대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도달할 수 없는 꿈에 불과할 것 같다.
추신 : 그럼 내가 주장하고 싶은 적정수가는 얼마인가? ......나도 모른다. 일개 개인이 함부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는 한 사회가 서비스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느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방적인 가격책정을 할 수 없다. 물론 시장경제 하에서라면 밀고 당긴 끝에 적정한 가격이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가격이 일률적으로 정해져있고 가격을 공급자가 조절할 수 없어 시장경제 원리로 풀 수 없는 체제라는 점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수가에 대한 논의를 한다 하더라도 공급자인 의사가 주장하는 수가는 시장경제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들에게서 원용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한국의 현실과는 어긋난 체제에서 결정된 수가이므로 수요자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적정수가를 정하는 일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공신력 있는 심판(아마도 정부)의 중재 아래 수요자가 부담할 소득대비 가격(의료보험료)과 공급자에게 주어져야 할 수고비(의료수가)의 비율부터 시작해서 의약분업으로 대표되는 현 의료시스템의 적정성과 낭비의 여부 등 여러가지 사안을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야 결론이 날 문제다. 결국 사회적 대합의의 문제로 환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