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5일
어른들을 위한 재미없는 우화 한 토막
어느날 주술사가 사는 나라에 서양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온 의사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토착신앙이 강한 원주민들로부터 '양귀신 들린 자들'이라는 모멸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환자를 치료하는데 매진하였다. 그리고 곧 이 나라의 토착의학에서 현대의학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이를 연구하려 하였다. 하지만 주술사는 이들의 시도를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를 품어주는 어머니 신을 말살하여 아프리카를 지배하려는 서양귀신들의 거대한 음모'로 생각하여 격분했다. 그래서 자신이 집대성한 주술철학과 그것에 기반한 약을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부에 건의했고, 주술사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민들의 반발을 살까 두려웠던 정부는 '전통의학 보호'라는 명분을 들어 그 주장을 인정해주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21세기. 굴곡 깊은 역사를 지나 수많은 싸움과 논쟁이 지나간 후에 이 나라는 전통문화를 지키면서도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도 몇 안되는 안정된 나라가 되었다. 물론 정부의 전통문화 보호 시책에 따라 주술사들이 시행하는 전통의학도 표표히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전통의학을 다루는 주술사들도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면서, 사상체계는 지켜가면서도 서양의학의 장점은 받아들이자는 사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독의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전통적인 약초 사용 의식을 꼭 지켜야만 약의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사조에 따라 한 주술사가 아침 이슬만을 모아서 탕제를 끓이거나, 약초를 짓이겨 때묻지 않은 처녀의 배에 바른 다음 환자가 그것을 핥아 먹도록 하는 등의 전통적인 약초 사용 의식을 배제하고, 약을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정제하여 환약을 만들었다. 이 약은 옛 방식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이 약의 효과에 주목한 이 나라의 의사들은 이 약의 효과를 검증하여 상품화하자고 제안했으나 '서양귀신에 씌인 자들'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던 이 주술사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학 보호법'을 들어 이들의 주장을 내쳤다. 비록 형태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자기가 만든 약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선배들의 업적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서양의학자'들이 쓰는 약들에는 부작용이 많다는 환자들의 인식도 있기 때문에 이 약을 이용하여 눈에 가시같은 '서양의학자'들을 몰아내려는 계산도 약간은 있었다.
'전통의학 보호법' 에 따라 자국 의사들이 전통의학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는 것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약을 외국에 소개하는 논문 또한 발표될 수 없어 이 약은 주술사들끼리만 쓰게 될 운명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침 아프리카 관광을 온 한 과학자가 이 약을 발견하고, 약을 몰래 반출한 후에 그 효과를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입증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게다가 그 약제가 '서양의학'에서 나온 '부작용 많은 약들'보다도 더 효과가 좋고 해가 없다는 것이 임상실험에 의해 밝혀졌다. 전 세계의 의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당연히 이 약을 수입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 양복을 입은 '서양귀신'들이 벌떼처럼 밀려들어왔다. 이 약을 만든 주술사는 순식간에 전세계 사람들에게 구세주같이 떠받들여졌고, 여러 나라의 매스컴, 과학자, 의사들이 이 나라를 찾아 전통주술과 전통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면서, 이 약이 나라를 홍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 정부는 주술사에게 각국을 돌면서 강연을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아프리카의 전통주술을 널리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 주술사도 이에 동의하여 각국을 돌며 TV 카메라 앞에서 전통주술을 시전했다. 그런데 주술사는 언제나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이면 "이 약을 쓰려면 아프리카의 정신을 이해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을 써서는 안된다. "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노력을 들여 만든 약이 아프리카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의학자'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쓰여져 약의 신성함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외국 의사들에게 받아들여졌을까? 혼란의 시대를 거쳐 모든 도그마가 파괴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상식이 된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주술사의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약은 아프리카의 주술체계 특유의 원리에 따라 작용하는 약이니 당연히 이를 공부한 사람만이 써야한다." 는 주술사의 주장에 대해 "당신의 그 주장부터 검증해보자. 정말 아프리카 주술 특유의 원리때문에 이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인가? " 라는 반론이 날아왔다. 전세계의 언론들은 이 주술사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한 사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여 환자의 이익을 갈취하려는 사기꾼', '서양의학이라는 말로 자기 나라를 현대의학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분리주의자' 등으로 매도했고, 코미디언들은 이 주술사의 옷차림새나 어눌한 영어 발음, 주술사의 나라가 힘들여 유지하고 있는 전통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주술사에게 열광하던 세계의 여론은 금방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게다가 그들은 조롱에 그치지 않고 그 약을 뿌리부터 분석하여 '현대의학'의 효과적인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이 작업에 성공하여 양산과정에 들어간 제약회사는 전 세계에 이 약을 팔기 시작했고, 곧 주술사가 사는 나라의 의사들도 이 약을 수입해서 환자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약의 로열티는 맨 처음 약제를 만든 주술사에게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제약회사는 '아프리카의 주술 원리'가 아닌 과학적 기전을 통해 이 약에 대한 특허를 얻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주술사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자기가 만든 약이 외국에서 팔리는 것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역시 서양귀신들은 무서운 놈들이다. 아프리카의 대지가 주는 풍요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독자적 사고방식을 자기들의 잣대에 끼워맞추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자들이다." 라고 울분을 터뜨리며 쓸쓸히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우리 나라의 국민들 만이라도 신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미 서양귀신들에 의해 더렵혀진 약을 자국 의사들이 수입해서 쓰지 못하도록 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이 나라에서 문제가 된 약의 특허는 허가되지 않았고 그 약은 주술사들만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후배 주술사들이 이 약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보며, 주술사는 어머니 대지신의 품에 안겼다.
뒷 이야기 하나 : 나중에 이 사태를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아프리카의 한 저널리스트는 "애초에 자국 의사들에게 연구를 허용했으면, 낙후된 우리나라의 의학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림은 물론, 향후 의학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정부의 전통의학 보호법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의학발전을 저해하는 방해물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말했다가 몰매를 맞고 '양귀신에 쓰여 전통을 무시하는 후레아들놈' 소리를 들으며 외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뒷 이야기 두울 : 후에 이 나라에서 민족주의적 가치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외국에서 우리 나라 주술사가 만든 약을 쓰고 있다. 우리를 괴롭혔던 서양의 의학이 드디어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의 전통의학을 받아들인 것이다.'라고 연설하였다. 정치적 열광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진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들이 이 말을 믿게 되었다.
# by | 2008/11/05 22:0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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