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08일
귀찮고 까다롭지만, 그래서 비로소 원칙이에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마저도 '의도가 있다'는 말로 거부하려는 시도가 있다. 논쟁의 기반을 닦는 rule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논쟁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시도가 셀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이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를 거부하면서 '의도가 있다'는 말을 하는 그 행위도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공정한 rule을 정하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에 불순함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이야기 또한 불순함이 서려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회의주의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남이 이것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기 논리의 허점을 찾을 수 있음이 지당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에게도 해당될 이야기를 일말의 의혹도 없이 입에 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논점 자체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논점을 말하는 상대방의 인격이나 사회적 위치, 고정관념 등을 이용하여 때리는 것이 관행이어서일까? 이런 수법은 일견 유효하게 보인다. '의도가 있다'는 말을 통해 관전자는 주장의 내용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장의 타당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이런 수법으로 논쟁의 판을 깰 수는 있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런 수법이 논쟁의 주장을 넘어 논쟁의 전제를 세우는 것에 까지 쓰여지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기왕 이전 글에도 써먹었으니, 이번에도 '의료보험 체계 편입의 우선순위'문제를 끌어와보자. 나는 이전 글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세태를 개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에 붙은 댓글 토론을 통해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질환에 대해 보장을 해 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료재원 분배를 위해, 우선순위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수요가 아니라 환자들의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rule'을 제시했다. 이렇게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만 (주1) , 직능간의 파워게임과 여론의 향배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중재자, 그리고 그 중재자에 편승하여 자신의 논리로써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임을 방기하여 해이에 빠지는 논쟁 당사자들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확고한 원칙 하에서 '그 원칙이 우리 직능의 편이기 때문에 우리 직능에 더 많은 지원을 해 줘야한다'같은 논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논쟁의 매커니즘이 사실 이렇다.)
주장의 가부는, '누가 더 지지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타당한 말을 하는가'로 결정된다. 타당하기 때문에 지지받는 것은 맞지만, 지지받기 때문에 타당성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가 많아 보이고 또 맞아 보이는 것은, 확고한 원칙이 없어 타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주장이 논쟁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과 이익이 상충할 때, 원칙을 버리는 선택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느 곳에서나 있는 일이고, 따라서 논쟁 당사자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원칙의 필요성 자체가 망각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최근에는 그것이 아예 주류담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절망.) 지금이라도 확고한 원칙을 외치는 중재자의 자세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주장을 인정하지 말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실증된 원칙을 통해 판단하면 된다. (주2)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의 참모습이 아닐까?
주1 :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원칙이란 것도 확고하게 정의되기 전에는 논쟁의 대상이며, 내가 주장한 rule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굳이 언급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중질환자는 자기가 알아서 치료하도록 내버려두고, 보험료를 내는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자기가 낸 세금은 자기가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된 세상에서, 의료분야라고 이런 류의 생각이 발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렇게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원칙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주2 : 이전 포스팅에서도 한 이야기지만, 원칙의 실증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쓰면 오해를 살 것 같으니 굳이 첨언하자면, 과학적 방법론은 무슨 특정한 이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는 사고방식'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원칙의 실증 뿐만이 아니라, 주장의 근거를 실증하는 것 역시 이래야 함은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졸필을 엮은 바이다. 원칙이란 논쟁 당사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공정성을 가장 잘 제공해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이다.
사족 : 실제로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쓰고 보니 사회 전체에서 합의된 원칙을 '대원칙', 그리고 개별적인 논쟁에서 합의된 원칙을 '소원칙'이라 생각하면 원칙을 정하는데 좀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소원칙이 논쟁 당사자들간에 합의되었더라도, 그것이 논쟁의 무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사자들간에 논쟁을 회피하고 이익을 나눠먹기 위해서 설계되었다면, 그것은 대원칙에 어긋날 것이다. 철학책과는 담을 쌓고 지낸 인생이라 이미 다른 학자들이 말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ㅇ>-<
# by | 2008/12/08 11:24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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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방법론 이야기만 꺼내면 달려드는 군이 몇 개 있는데, 특히 전투력이 높은 군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렇습니다. 아차, 이야기라고 할 것도 못 되는군요. 글 쓰다가 하나의 예로서 언급만 한 정도인데도 그렇지요. =ㅂ= '이러니 이공계가 막장이지......'같은 생각도 들고, 뭐 이렇게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