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30일
내가 대체의학을 용인할 수 없는 이유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들을때마다 꼭 성대 언저리에서 터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말이 있다.
'좋다. 당신들의 말 다 인정하겠다. 그러니 한 번 마음대로 해봐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라'
하지만, 별 문제 안 될 것 같은 이 말은, 사실 의사라면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왜일까? 1차 의료를 담당한 의사는 적절한 시점에 환자를 전원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실제로 큰 병원으로 옮기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환자를 붙잡아두고 질질 끈 그 의사 찾아가 뒤집어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를 억울하다고는 생각할지언정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는데, 그것은 자기 능력 밖의 환자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의사는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이다. (주1) 반면에 암이나 다른 중병인지 모르고 복통이나 피로감, 통증같은 증상만을 해결할 요량으로 병원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늦게 병원에 와서 병을 진단받고, 제 때 치료받을 시점을 놓치게 한 원인에 대해 책망하는 장면을 보기는 힘들다.
만약 의사가 지고 있는 이러한 책임을 역시 지겠다면, 개인적으로는 의학 이외의 다른 술기가 환자를 다루는 것을 용인할 의향이 있다.(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술기의 이론적 정합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널리 쓰이는 것과, 옳은 것은 분명 다르다.) 이미 이런 식으로 의료정책을 운영하는 나라도 있고, 대체의학자가 환자의 치료를 지연시킨 것을 인정하여 처벌을 받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이런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윤리보다는 오늘 저녁을 더 걱정하는 내 특이한 막장성향 때문이고, 절대 다수의 의사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반의학 운동가들이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피해는 남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실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피해이다. 'do not harm'.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사의 대원칙은, 바로 눈 앞에 마주 앉은 환자를 두고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모든 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2) 그리고 바로 이 대원칙을, 의사는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용인해준 까닭에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는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 라는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결국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의사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일단 먼저 믿음을 줘봐라" 는 말이 꼭 나온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쪽이 그 당위성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의사들을 책망하는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없다. 믿음을 얻고 싶은가? 의사의 감시를 피해 자기가 생각하는 술기를 마음껏 펼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실증하라. 실증을 통해 당위성을 증명하라. 의사가 반의학 운동가들의 주장을 듣지 않는 것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 주장을 용인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원칙의 붕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증을 통해 이 두려움을 없애지 못하는 한, 또는 자기가 신봉하는 술기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키우는 한, 적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말을 계속 할 것이다.
주1 :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 의사는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훈련되어있기 때문에,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정황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전원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입장에서는 재빨리 전원했으면 좋겠지만, 적절한 전원 시점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것은 1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는 인간 이상의 일을 하라는 무리한 요구이다. 눈으로 척 한 번 보고 병을 알아내라는 식의 주장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단지, 세밀하게 잘 살펴봤으면 놓치지 않았을 정황이나 증거를 놓쳐서 전원의 시점을 늦춘 것이라면, 이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문제를 삼을 수 있고, 실제로 삼고 있다. 의학은 절대적인 교리가 아닌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결과'가 아닌 '(현 시점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가 중시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더 나은 방법론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적인 것임을 명심하면 의료행위에 있어 많은 오해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주2 :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에서, 생명에 위협이 되는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말라는 식으로 협의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치료의 지연을 통해 예후에 영향을 끼치는 간접적 위해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해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다. 가격대비 효용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증명이 없음에도, 환자로 하여금 의학적 필요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행위를 구매하게 하고 심지어 원래 필요했던 의료행위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등의 행위 또한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판단한다. 이런 판단의 겉모습과 의사에 대한 편견을 버무려 '밥그릇 지키기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면 더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사람은 효과가 실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에 비싼 돈을 쓰겠다는 수요층이므로, 의사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불필요하게 들릴 것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 by | 2008/12/30 14:0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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