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03일
'오픈소스'와 '익명성'
'오픈소스'. 지성의 공유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표현의 증거를 남기고 싶은 욕구,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증대된 생산력, 그리고 개별화된 소비욕구와 공급욕구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유통체계. 이렇게 각각 따로 발전해왔던 수요와 공급의 첨단기술이 모여, 수요와 공급이 한데 어우러져 구별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활동이 창출되었다.
기존 공급체계와 유통체계가 다양한 수요를 모두 충족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수요자들은 자기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해왔고, 그 결과 시장참여자들은 기성 유통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부터 공급체계를 새로 짜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발달은 지식을 유통하는 기존의 시스템에 의존할 필요성을 크게 줄여주었고, 지식의 흐름은 점점 방대해져 곧 산업이 되었다. 방대한 지식은 그 자체로 사람을 불러모았고, 사람들은 지식의 흐름 안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모으고 또 제공하면서 다양한 수요를 스스로 충족했다. 이윽고 이런 흐름은 지식산업을 기존의 산업에서 분리하여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곧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한 없이 풀려 진화를 거듭했다. 이렇게 기존 시스템의 경직성을 타파하기 위해 출발한 오픈소스는, 이제 기존 시스템과의 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단계에 이른다. 오픈소스 시스템에 참여하는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 없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의 참여자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새 시대의 흐름과 적당히 거리를 두려한 기존 시장의 지배자들은 자기 산물이 오픈소스에서 진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들은 기존 시장에서 새 시장으로의 변화가 자기에게 손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 시장지배자들로서, 오픈소스의 겉모습은 빌려오되 그 유통은 오로지 자기들만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이들은 적어도 정직하기라도 하다. 겉으로는 오픈소스를 추구한다 하면서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나중에 오픈소스의 산물을 독점하려 시도하는 자들이 오픈소스 시대의 권력공백을 틈타 활동한다. 이들은 자기가 유리할 때는 오픈소스 정신을 들먹이면서, 그 산물이 이익을 낼 시점에서는 기존 경제 시스템의 룰을 강요하여 이익을 독점하고자 했다. (주) 이는 오픈소스 시대의 활력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매우 질이 나쁜 행위이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아예 오픈소스의 판을 깨서 기존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들에 비하면 차라리 낫다.
오픈소스는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양방향성 피드백을 공유하며 이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집단지성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을 위해 꼭 필요한 토양이 바로 언론의 자유이다. 개인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그것이 처벌받지 않음을 보장받는 사회 하에서만 소비자는 비로소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집단지성을 쌓아갈 원동력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언론의 자유는 바로 '익명성'과 맞닿아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익명성은 인터넷에서 이름을 까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익명성이 아니다. '힘을 가진 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이라는 의미에서의 익명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름없는 군중이 세상을 바꾸는' 역동적인 시점에서의 그 '이름없음'을 논할 때에 쓰이는 익명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복받지 않을 최소한의 방패'로서의 익명성에 대한 사유이다. 사회에서 익명성의 문화가 제거되는 순간,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는 더 이상 활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익명성이 없더라도 비판하려는 대상이 자신을 보복하지 않거나, 또는 못할 것이라는 상호신용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익명성은 언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소시민들이 자기의 힘을 발산할 수단이 없던 폐쇄사회의 시대에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자는 힘을 가진 자의 눈에 너무 쉽게 띄였다. 때문에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고, 다른 유력자나 집단의 비호를 받음으로써 핍박하려는 자와 대등한 권력을 개인적으로 얻거나 빌리지 못하는 이상, 권력자와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언제나 모험이었다. 이후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비로소 '익명성'이 생겨났고, 익명성을 방패로 내건 반대자들의 힘이 권력자들이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해졌을 때, 권력자들은 민중의 힘을 인정하고 민중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현대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그리고 정치분야와는 달리 절대주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던 경제 분야 또한, 이제 민중의 개인적 욕구가 '오픈소스'라는 형태로 경제 민주주의를 구현해가고 있다.
그런 현 시점에서 1인 미디어마저도 규제하려는 언론통제를 시도하는 것은, 수많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익명성'을 통해 형성한 느슨한 연대를 파괴하여 각개격파하고자 획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성의 폐해가 심각하므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아예 익명성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은 표현의 자유,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원칙을 흔들려 하지 말라.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익명성, 시위현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익명성, 폐쇄된 기표소에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익명성,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더 타기 위해 이익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그 익명성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익명성은 네티즌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기로 결정한 시민들 모두가 이미 향유하고 있고, 그래서 지켜져야 할 권리인 것이다.
주 : 대중이 문화를 이끌어가는 시대에서는, '널리 알려지는 것' 그 자체도 또한 이익이다. 노래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일본의 니코니코 동화(일본의 유튜브 쯤 되는 사이트)에서 일반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패러디하며 히트한 어떤 노래가 일본 저작권관리단체인 JASRAC이 개입된 이후에는 노래를 작곡한 개인 작곡가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널리 알려진 노래를 장사에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독점하는 순간, 이 노래를 통해 이뤄졌던 오픈소스의 축제는 끝난 것이다.
# by | 2009/01/03 14:16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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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이 무슨 절대악인 것처럼 쉽게 얘기하는 '나님'들이 적지 않죠.
스스로 목에 개목걸이 차고 싶어서 헥헥대니, 이건 뭐 SM도 아니고...
(하기사, 그들도 정작 자기 유리한 일엔 필사적으로 '익명성' 찾는 게 다반사라
그 시점에서 자기 바닥을 다 드러내지만...)
안 그랬다간 좋은 일 해놓고도 제로보드4의 경우처럼 제작자가 좋은 일 해 놓고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황당한 경우도 생기고... 오픈소스 코드 가져다가 재가공 코드 공개도 안 하고 팔아먹는 도둑놈들도 생기고... 아무튼 복잡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