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검증
2008/12/12 내가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2]
2008/12/08 귀찮고 까다롭지만, 그래서 비로소 원칙이에요. [4]
2008/12/01 트랙백을 얕보면 안된다. [4]
2008/11/30 뜸사랑의 전략에 대한 매우 짦은 참견 [17]
2008/11/25 '한방'에 대한 검증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것에 대한 소고(小考) [16]
2008/09/14 화상침? [17]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들을때마다 꼭 성대 언저리에서 터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말이 있다.
'좋다. 당신들의 말 다 인정하겠다. 그러니 한 번 마음대로 해봐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라'
하지만, 별 문제 안 될 것 같은 이 말은, 사실 의사라면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왜일까? 1차 의료를 담당한 의사는 적절한 시점에 환자를 전원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실제로 큰 병원으로 옮기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환자를 붙잡아두고 질질 끈 그 의사 찾아가 뒤집어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를 억울하다고는 생각할지언정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는데, 그것은 자기 능력 밖의 환자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의사는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이다. (주1) 반면에 암이나 다른 중병인지 모르고 복통이나 피로감, 통증같은 증상만을 해결할 요량으로 병원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늦게 병원에 와서 병을 진단받고, 제 때 치료받을 시점을 놓치게 한 원인에 대해 책망하는 장면을 보기는 힘들다.
만약 의사가 지고 있는 이러한 책임을 역시 지겠다면, 개인적으로는 의학 이외의 다른 술기가 환자를 다루는 것을 용인할 의향이 있다.(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술기의 이론적 정합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널리 쓰이는 것과, 옳은 것은 분명 다르다.) 이미 이런 식으로 의료정책을 운영하는 나라도 있고, 대체의학자가 환자의 치료를 지연시킨 것을 인정하여 처벌을 받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이런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윤리보다는 오늘 저녁을 더 걱정하는 내 특이한 막장성향 때문이고, 절대 다수의 의사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반의학 운동가들이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피해는 남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실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피해이다. 'do not harm'.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사의 대원칙은, 바로 눈 앞에 마주 앉은 환자를 두고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모든 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2) 그리고 바로 이 대원칙을, 의사는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용인해준 까닭에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는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 라는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결국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의사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일단 먼저 믿음을 줘봐라" 는 말이 꼭 나온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쪽이 그 당위성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의사들을 책망하는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없다. 믿음을 얻고 싶은가? 의사의 감시를 피해 자기가 생각하는 술기를 마음껏 펼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실증하라. 실증을 통해 당위성을 증명하라. 의사가 반의학 운동가들의 주장을 듣지 않는 것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 주장을 용인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원칙의 붕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증을 통해 이 두려움을 없애지 못하는 한, 또는 자기가 신봉하는 술기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키우는 한, 적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말을 계속 할 것이다.
주1 :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 의사는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훈련되어있기 때문에,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정황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전원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입장에서는 재빨리 전원했으면 좋겠지만, 적절한 전원 시점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것은 1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는 인간 이상의 일을 하라는 무리한 요구이다. 눈으로 척 한 번 보고 병을 알아내라는 식의 주장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단지, 세밀하게 잘 살펴봤으면 놓치지 않았을 정황이나 증거를 놓쳐서 전원의 시점을 늦춘 것이라면, 이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문제를 삼을 수 있고, 실제로 삼고 있다. 의학은 절대적인 교리가 아닌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결과'가 아닌 '(현 시점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가 중시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더 나은 방법론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적인 것임을 명심하면 의료행위에 있어 많은 오해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주2 :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에서, 생명에 위협이 되는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말라는 식으로 협의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치료의 지연을 통해 예후에 영향을 끼치는 간접적 위해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해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다. 가격대비 효용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증명이 없음에도, 환자로 하여금 의학적 필요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행위를 구매하게 하고 심지어 원래 필요했던 의료행위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등의 행위 또한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판단한다. 이런 판단의 겉모습과 의사에 대한 편견을 버무려 '밥그릇 지키기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면 더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사람은 효과가 실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에 비싼 돈을 쓰겠다는 수요층이므로, 의사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불필요하게 들릴 것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 by | 2008/12/30 14:0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이 댓글에서 새삼 느낀 거지만, 자기가 해야 할 말과 제3자가 해야 할 말을 섞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논쟁의 두 당사자 A,B가 있다. A는 현재 사회의 기득권을 획득한 측이고, B는 그 기득권을 가져오려는 자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굳이 덧붙이자면, '기득권'이란 단어에는 어떤 가치판단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기득권이 나쁜지 아닌지는 상호간 논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논쟁 전에 이미 기득권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제3자의 위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B는 A가 기득권을 가질 때 벌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득권을 가져올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러므로 'A가 나쁘다'는 주장을 B가 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논쟁을 지켜보는 제3자로 하여금 B의 편을 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 권장해야 한다. 이런 치열한 공방이 문제 해결의 길에 쌓인 흙먼지를 더 잘 쓸어낸다.
하지만, 'A가 나쁘기 때문에 B가 일을 대신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 순간, 제3자였던 C는 의문을 품는다.
"A가 나쁘다는 것은 납득했어. 하지만 그게 B가 A를 대신해야 하는 이유가 될까?"
B는 A를 공격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남의 주목은 비교적 쉽게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주목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B가 기득권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이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만, 드디어 제3자들이 A에게서 B로 기득권을 옮겨주는 수고를 감수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게을리한채 'A가 나쁘다'는 말만 계속 하고 있으면, 그것은 기득권의 조정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그저 A의 잘못을 성토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운동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렇게 시민운동의 포지션에 자신을 놓게 되면, 그 포지션에 스스로 갇혀 기득권 획득의 꿈은 멀어진다. 이런 포지션에서는 'A의 기득권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을 가진 사람들을 동조자로 얻게 되고, 이런 동조자들 앞에서 '그 기득권을 B가 가져오겠다'고 하면 '말바꾸기'라는 오해를 사게 된다.
'더러운 기득권을 가져오려하다니, 결국 니들도 똑같은 놈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간단하다. 자기의 당위성은 저리 치우고, 남의 티끌만을 언급하라. 이런 이야기를 듣기는 싫은가? 그렇다면 자기가 기득권을 가져와야 할 당위성을 주장하라. 기득권자의 트집을 잡아 '밥그릇'으로 매도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주장에 당위성을 싣지 못하는 한 어느새 자신도 밥그릇의 한 쪽을 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아니, 명심해야겠다.
출처 : 뇌내망상
추신 : 당위성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과학적 방법론 이외에는 없다. 지금까지 인간현상의 근거를 가장 잘 설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정 집단의 실증되지 않은 주장을 기반으로 하는 주장은 언젠가 실증된 근거를 기반으로 한 주장에 우위를 내주고 만다.
# by | 2008/12/12 23:37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2)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마저도 '의도가 있다'는 말로 거부하려는 시도가 있다. 논쟁의 기반을 닦는 rule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논쟁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시도가 셀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이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를 거부하면서 '의도가 있다'는 말을 하는 그 행위도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공정한 rule을 정하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에 불순함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이야기 또한 불순함이 서려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회의주의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남이 이것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기 논리의 허점을 찾을 수 있음이 지당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에게도 해당될 이야기를 일말의 의혹도 없이 입에 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논점 자체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논점을 말하는 상대방의 인격이나 사회적 위치, 고정관념 등을 이용하여 때리는 것이 관행이어서일까? 이런 수법은 일견 유효하게 보인다. '의도가 있다'는 말을 통해 관전자는 주장의 내용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장의 타당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이런 수법으로 논쟁의 판을 깰 수는 있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런 수법이 논쟁의 주장을 넘어 논쟁의 전제를 세우는 것에 까지 쓰여지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기왕 이전 글에도 써먹었으니, 이번에도 '의료보험 체계 편입의 우선순위'문제를 끌어와보자. 나는 이전 글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세태를 개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에 붙은 댓글 토론을 통해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질환에 대해 보장을 해 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료재원 분배를 위해, 우선순위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수요가 아니라 환자들의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rule'을 제시했다. 이렇게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만 (주1) , 직능간의 파워게임과 여론의 향배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중재자, 그리고 그 중재자에 편승하여 자신의 논리로써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임을 방기하여 해이에 빠지는 논쟁 당사자들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확고한 원칙 하에서 '그 원칙이 우리 직능의 편이기 때문에 우리 직능에 더 많은 지원을 해 줘야한다'같은 논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논쟁의 매커니즘이 사실 이렇다.)
주장의 가부는, '누가 더 지지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타당한 말을 하는가'로 결정된다. 타당하기 때문에 지지받는 것은 맞지만, 지지받기 때문에 타당성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가 많아 보이고 또 맞아 보이는 것은, 확고한 원칙이 없어 타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주장이 논쟁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과 이익이 상충할 때, 원칙을 버리는 선택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느 곳에서나 있는 일이고, 따라서 논쟁 당사자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원칙의 필요성 자체가 망각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최근에는 그것이 아예 주류담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절망.) 지금이라도 확고한 원칙을 외치는 중재자의 자세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주장을 인정하지 말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실증된 원칙을 통해 판단하면 된다. (주2)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의 참모습이 아닐까?
주1 :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원칙이란 것도 확고하게 정의되기 전에는 논쟁의 대상이며, 내가 주장한 rule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굳이 언급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중질환자는 자기가 알아서 치료하도록 내버려두고, 보험료를 내는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자기가 낸 세금은 자기가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된 세상에서, 의료분야라고 이런 류의 생각이 발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렇게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원칙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주2 : 이전 포스팅에서도 한 이야기지만, 원칙의 실증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쓰면 오해를 살 것 같으니 굳이 첨언하자면, 과학적 방법론은 무슨 특정한 이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는 사고방식'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원칙의 실증 뿐만이 아니라, 주장의 근거를 실증하는 것 역시 이래야 함은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졸필을 엮은 바이다. 원칙이란 논쟁 당사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공정성을 가장 잘 제공해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이다.
사족 : 실제로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쓰고 보니 사회 전체에서 합의된 원칙을 '대원칙', 그리고 개별적인 논쟁에서 합의된 원칙을 '소원칙'이라 생각하면 원칙을 정하는데 좀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소원칙이 논쟁 당사자들간에 합의되었더라도, 그것이 논쟁의 무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사자들간에 논쟁을 회피하고 이익을 나눠먹기 위해서 설계되었다면, 그것은 대원칙에 어긋날 것이다. 철학책과는 담을 쌓고 지낸 인생이라 이미 다른 학자들이 말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ㅇ>-<
# by | 2008/12/08 11:24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4)
바로 밑의 글 '뜸사랑의 전략에 대한 매우 짦은 참견'에 트랙백이 달렸다.
하지만 이 글은 공지사항인 '당 블로그 사용설명서' 에 따르면 허용되어서는 안 될 트랙백이다.
1) '양의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학에 대한 편견과 함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왜 '양의학'이라는 단어가 편견이고 비과학적인지는, 이 글에 적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양의'라는 단어를 쓰려면 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을 만한 다른 논거를 들이댄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양의'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싶지조차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 그 외에도 '양의학'적 치료법에 대한 코멘트도 눈에 밟힌다. 아토피 치료법 중 intensive한 case를 가지고 '양의학'이 모든 치료를 그렇게 한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외래에서 아토피를 치료할 때 의사가 아이와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는지를 생각하면 '단절'이라는 단어는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듯 하다. 설명하지 않는 의사가 단절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의학 그 자체가 단절적인 것은 아니다.
3) '기와 음양호행/경락 등을 부정하면 구당과 한의학자체가 부정된다'는 문장에서 '기와 음양호행/경락이 실재한다'는 선입견이 들어가있다. 따라서 이런 개념이 실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본글에 달릴 성질의 트랙백이 아니다. 이 사실과는 별도로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뜸사랑조차 한방적 개념을 가지고 자기들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 같다는 단서이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뜸사랑과 한방의 싸움에 대해 '무의미함'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둘이 같은 개념(그것도 실증되지 않은)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면, 왜 굳이 뜸사랑은 한방 면허의 테두리 밖에 나가려고 하는 것인가. 따로 나가야하는 다른 객관적인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따로 나가도록 인증해 줄 이유도 없다. 둘 다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못 대고 있는 셈이므로, 둘 다 진짜로 '밥그릇'싸움을 한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4) 무엇보다, 본글은 불편부당을 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트랙백된 글의 말미엔 구당이 쓴 책을 살 수 있도록 링크가 걸려있다. 이건 본글의 중립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다. 위에 든 트랙백 삭제에 관한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이유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자기 블로그에 자기가 믿는 내용을 쓰는 것을 뭐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트랙백, 링크, 메타 업로드를 하는 순간 그 내용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남에게 알리고 싶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객관적인 검증을 통과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 트랙백을 하기 전에는 '내가 왜 이 글에 트랙백을 하려는 것인가'부터 찬찬히 생각하고 트랙백 창에 주소를 써넣도록 하자.
추신 : 원래 '당 블로그 사용설명서'에 따르지 않는 글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몰아칠 생각이었지만, 이 글에 한해서는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케이스이기도 하고, 트랙백하신 블로그 제목을 보면 아이가 아픈 것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의료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비판할 부분이 못되며, 최대한 많은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의 태도를 존경합니다. 단지, 트랙백을 함으로써 혼자 믿는 것을 떠나 '나는 이래서 믿는다'는 선언이 되면 그것에는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위에 설명한 바입니다. 개인적인 악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by | 2008/12/01 16:35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4)
# by | 2008/11/30 19:4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핑백(2) | 덧글(17)
# by | 2008/11/25 18:50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16)
# by | 2008/09/14 00:00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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