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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체의학을 용인할 수 없는 이유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들을때마다 꼭 성대 언저리에서 터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말이 있다.

'좋다. 당신들의 말 다 인정하겠다. 그러니 한 번 마음대로 해봐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라'

하지만, 별 문제 안 될 것 같은 이 말은, 사실 의사라면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왜일까? 1차 의료를 담당한 의사는 적절한 시점에 환자를 전원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실제로 큰 병원으로 옮기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환자를 붙잡아두고 질질 끈 그 의사 찾아가 뒤집어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를 억울하다고는 생각할지언정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는데, 그것은 자기 능력 밖의 환자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의사는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이다. (주1) 반면에 암이나 다른 중병인지 모르고 복통이나 피로감, 통증같은 증상만을 해결할 요량으로 병원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늦게 병원에 와서 병을 진단받고, 제 때 치료받을 시점을 놓치게 한 원인에 대해 책망하는 장면을 보기는 힘들다. 

만약 의사가 지고 있는 이러한 책임을 역시 지겠다면, 개인적으로는 의학 이외의 다른 술기가 환자를 다루는 것을 용인할 의향이 있다.(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술기의 이론적 정합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널리 쓰이는 것과, 옳은 것은 분명 다르다.)  이미 이런 식으로 의료정책을 운영하는 나라도 있고, 대체의학자가 환자의 치료를 지연시킨 것을 인정하여 처벌을 받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이런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윤리보다는 오늘 저녁을 더 걱정하는 내 특이한 막장성향 때문이고, 절대 다수의 의사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반의학 운동가들이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피해는 남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실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피해이다. 'do not harm'.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사의 대원칙은, 바로 눈 앞에 마주 앉은 환자를 두고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모든 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2) 그리고 바로 이 대원칙을, 의사는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용인해준 까닭에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는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 라는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결국 반의학 운동가들의 말을 의사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일단 먼저 믿음을 줘봐라" 는 말이 꼭 나온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쪽이 그 당위성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의사들을 책망하는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없다. 믿음을 얻고 싶은가? 의사의 감시를 피해 자기가 생각하는 술기를 마음껏 펼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실증하라. 실증을 통해 당위성을 증명하라. 의사가 반의학 운동가들의 주장을 듣지 않는 것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 주장을 용인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원칙의 붕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증을 통해 이 두려움을 없애지 못하는 한, 또는 자기가 신봉하는 술기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키우는 한, 적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말을 계속 할 것이다.

주1 :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 의사는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훈련되어있기 때문에,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정황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전원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물론 환자입장에서는 재빨리 전원했으면 좋겠지만, 적절한 전원 시점을 완벽하게 알아내는 것은 1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는 인간 이상의 일을 하라는 무리한 요구이다. 눈으로 척 한 번 보고 병을 알아내라는 식의 주장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단지, 세밀하게 잘 살펴봤으면 놓치지 않았을 정황이나 증거를 놓쳐서 전원의 시점을 늦춘 것이라면, 이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문제를 삼을 수 있고, 실제로 삼고 있다. 의학은 절대적인 교리가 아닌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결과'가 아닌 '(현 시점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가 중시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더 나은 방법론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적인 것임을 명심하면 의료행위에 있어 많은 오해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주2 :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에서, 생명에 위협이 되는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말라는 식으로 협의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치료의 지연을 통해 예후에 영향을 끼치는 간접적 위해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해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다. 가격대비 효용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증명이 없음에도, 환자로 하여금 의학적 필요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행위를 구매하게 하고 심지어 원래 필요했던 의료행위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등의 행위 또한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판단한다. 이런 판단의 겉모습과 의사에 대한 편견을 버무려 '밥그릇 지키기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면 더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사람은 효과가 실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에 비싼 돈을 쓰겠다는 수요층이므로, 의사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불필요하게 들릴 것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이 다가 아니라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by 아이페오스 | 2008/12/30 14:0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내가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이 댓글에서 새삼 느낀 거지만, 자기가 해야 할 말과 제3자가 해야 할 말을 섞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논쟁의 두 당사자 A,B가 있다. A는 현재 사회의 기득권을 획득한 측이고, B는 그 기득권을 가져오려는 자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굳이 덧붙이자면, '기득권'이란 단어에는 어떤 가치판단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기득권이 나쁜지 아닌지는 상호간 논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논쟁 전에 이미 기득권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제3자의 위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B는 A가 기득권을 가질 때 벌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득권을 가져올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러므로 'A가 나쁘다'는 주장을 B가 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논쟁을 지켜보는 제3자로 하여금 B의 편을 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 권장해야 한다. 이런 치열한 공방이 문제 해결의 길에 쌓인 흙먼지를 더 잘 쓸어낸다.

하지만, 'A가 나쁘기 때문에 B가 일을 대신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 순간, 제3자였던 C는 의문을 품는다.
"A가 나쁘다는 것은 납득했어. 하지만 그게 B가 A를 대신해야 하는 이유가 될까?"

B는 A를 공격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남의 주목은 비교적 쉽게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주목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B가 기득권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이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만, 드디어 제3자들이 A에게서 B로 기득권을 옮겨주는 수고를 감수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게을리한채 'A가 나쁘다'는 말만 계속 하고 있으면, 그것은 기득권의 조정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그저 A의 잘못을 성토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운동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렇게 시민운동의 포지션에 자신을 놓게 되면, 그 포지션에 스스로 갇혀 기득권 획득의 꿈은 멀어진다. 이런 포지션에서는 'A의 기득권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을 가진 사람들을 동조자로 얻게 되고, 이런 동조자들 앞에서 '그 기득권을 B가 가져오겠다'고 하면 '말바꾸기'라는 오해를 사게 된다.

'더러운 기득권을 가져오려하다니, 결국 니들도 똑같은 놈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간단하다. 자기의 당위성은 저리 치우고, 남의 티끌만을 언급하라. 이런 이야기를 듣기는 싫은가? 그렇다면 자기가 기득권을 가져와야 할 당위성을 주장하라. 기득권자의 트집을 잡아 '밥그릇'으로 매도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주장에 당위성을 싣지 못하는 한 어느새 자신도 밥그릇의 한 쪽을 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아니, 명심해야겠다.  

출처 : 뇌내망상

추신 : 당위성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과학적 방법론 이외에는 없다. 지금까지 인간현상의 근거를 가장 잘 설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정 집단의 실증되지 않은 주장을 기반으로 하는 주장은 언젠가 실증된 근거를 기반으로 한 주장에 우위를 내주고 만다.

by 아이페오스 | 2008/12/12 23:37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2)

귀찮고 까다롭지만, 그래서 비로소 원칙이에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마저도 '의도가 있다'는 말로 거부하려는 시도가 있다. 논쟁의 기반을 닦는 rule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논쟁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시도가 셀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이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rule을 정하자는 이야기를 거부하면서 '의도가 있다'는 말을 하는 그 행위도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공정한 rule을 정하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에 불순함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이야기 또한 불순함이 서려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회의주의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남이 이것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기 논리의 허점을 찾을 수 있음이 지당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에게도 해당될 이야기를 일말의 의혹도 없이 입에 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논점 자체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논점을 말하는 상대방의 인격이나 사회적 위치, 고정관념 등을 이용하여 때리는 것이 관행이어서일까? 이런 수법은 일견 유효하게 보인다. '의도가 있다'는 말을 통해 관전자는 주장의 내용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장의 타당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이런 수법으로 논쟁의 판을 깰 수는 있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런 수법이 논쟁의 주장을 넘어 논쟁의 전제를 세우는 것에 까지 쓰여지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기왕 이전 글에도 써먹었으니, 이번에도 '의료보험 체계 편입의 우선순위'문제를 끌어와보자. 나는 이전 글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세태를 개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에 붙은 댓글 토론을 통해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질환에 대해 보장을 해 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효율적인 의료재원 분배를 위해, 우선순위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수요가 아니라 환자들의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rule'을 제시했다. 이렇게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만 (주1) , 직능간의 파워게임과 여론의 향배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중재자, 그리고 그 중재자에 편승하여 자신의 논리로써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임을 방기하여 해이에 빠지는 논쟁 당사자들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확고한 원칙 하에서 '그 원칙이 우리 직능의 편이기 때문에 우리 직능에 더 많은 지원을 해 줘야한다'같은 논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논쟁의 매커니즘이 사실 이렇다.)

주장의 가부는, '누가 더 지지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타당한 말을 하는가'로 결정된다. 타당하기 때문에 지지받는 것은 맞지만, 지지받기 때문에 타당성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가 많아 보이고 또 맞아 보이는 것은, 확고한 원칙이 없어 타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주장이 논쟁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과 이익이 상충할 때, 원칙을 버리는 선택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느 곳에서나 있는 일이고, 따라서 논쟁 당사자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원칙의 필요성 자체가 망각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최근에는 그것이 아예 주류담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절망.) 지금이라도 확고한 원칙을 외치는 중재자의 자세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주장을 인정하지 말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실증된 원칙을 통해 판단하면 된다. (주2)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의 참모습이 아닐까?


주1 :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원칙이란 것도 확고하게 정의되기 전에는 논쟁의 대상이며, 내가 주장한 rule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굳이 언급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중질환자는 자기가 알아서 치료하도록 내버려두고, 보험료를 내는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자기가 낸 세금은 자기가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된 세상에서, 의료분야라고 이런 류의 생각이 발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렇게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원칙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주2 : 이전 포스팅에서도 한 이야기지만, 원칙의 실증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쓰면 오해를 살 것 같으니 굳이 첨언하자면, 과학적 방법론은 무슨 특정한 이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는 사고방식'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원칙의 실증 뿐만이 아니라, 주장의 근거를 실증하는 것 역시 이래야 함은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졸필을 엮은 바이다. 원칙이란 논쟁 당사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공정성을 가장 잘 제공해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이다.  

사족 : 실제로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쓰고 보니 사회 전체에서 합의된 원칙을 '대원칙', 그리고 개별적인 논쟁에서 합의된 원칙을 '소원칙'이라 생각하면 원칙을 정하는데 좀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소원칙이 논쟁 당사자들간에 합의되었더라도, 그것이 논쟁의 무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사자들간에 논쟁을 회피하고 이익을 나눠먹기 위해서 설계되었다면, 그것은 대원칙에 어긋날 것이다. 철학책과는 담을 쌓고 지낸 인생이라 이미 다른 학자들이 말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ㅇ>-<

by 아이페오스 | 2008/12/08 11:24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을 얕보면 안된다.

바로 밑의 글 '뜸사랑의 전략에 대한 매우 짦은 참견'에 트랙백이 달렸다.

하지만 이 글은 공지사항인 '당 블로그 사용설명서' 에 따르면 허용되어서는 안 될 트랙백이다.

 

1) '양의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학에 대한 편견과 함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왜 '양의학'이라는 단어가 편견이고 비과학적인지는, 이 글에 적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양의'라는 단어를 쓰려면 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을 만한 다른 논거를 들이댄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양의'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싶지조차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 그 외에도 '양의학'적 치료법에 대한 코멘트도 눈에 밟힌다. 아토피 치료법 중 intensive한 case를 가지고 '양의학'이 모든 치료를 그렇게 한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외래에서 아토피를 치료할 때 의사가 아이와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는지를 생각하면 '단절'이라는 단어는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듯 하다. 설명하지 않는 의사가 단절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의학 그 자체가 단절적인 것은 아니다.

 

3) '기와 음양호행/경락 등을 부정하면 구당과 한의학자체가 부정된다'는 문장에서 '기와 음양호행/경락이 실재한다'는 선입견이 들어가있다. 따라서 이런 개념이 실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본글에 달릴 성질의 트랙백이 아니다. 이 사실과는 별도로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뜸사랑조차 한방적 개념을 가지고 자기들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 같다는 단서이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뜸사랑과 한방의 싸움에 대해 '무의미함'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둘이 같은 개념(그것도 실증되지 않은)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면, 왜 굳이 뜸사랑은 한방 면허의 테두리 밖에 나가려고 하는 것인가. 따로 나가야하는 다른 객관적인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따로 나가도록 인증해 줄 이유도 없다. 둘 다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못 대고 있는 셈이므로, 둘 다 진짜로 '밥그릇'싸움을 한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4) 무엇보다, 본글은 불편부당을 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트랙백된 글의 말미엔 구당이 쓴 책을 살 수 있도록 링크가 걸려있다. 이건 본글의 중립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다. 위에 든 트랙백 삭제에 관한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이유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자기 블로그에 자기가 믿는 내용을 쓰는 것을 뭐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트랙백, 링크, 메타 업로드를 하는 순간 그 내용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남에게 알리고 싶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객관적인 검증을 통과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 트랙백을 하기 전에는 '내가 왜 이 글에 트랙백을 하려는 것인가'부터 찬찬히 생각하고 트랙백 창에 주소를 써넣도록 하자.

 

추신 : 원래 '당 블로그 사용설명서'에 따르지 않는 글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몰아칠 생각이었지만, 이 글에 한해서는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케이스이기도 하고, 트랙백하신 블로그 제목을 보면 아이가 아픈 것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의료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비판할 부분이 못되며, 최대한 많은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의 태도를 존경합니다. 단지, 트랙백을 함으로써 혼자 믿는 것을 떠나 '나는 이래서 믿는다'는 선언이 되면 그것에는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위에 설명한 바입니다. 개인적인 악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by 아이페오스 | 2008/12/01 16:35 | 편견으로 그득한 위험한 사상 | 트랙백 | 덧글(4)

뜸사랑의 전략에 대한 매우 짦은 참견

장진영 씨 기사가 나간 뒤로, 포털 사이트는 뜸사랑과 한방 사이의 전쟁으로 난리도 아닙니다.
오늘은 왔다갔다 할 곳이 많아서 관련 글을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양 측의 논리는 어느 정도 정리되더군요.

한방 : 구당은 사이비다. 한방적 원리에 맞지도 않는 침뜸술을 함부로 하고 있다.
뜸사랑 :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당선생의 침술로 효험을 봤다. 능력이 있으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 외에 의료사고나 불친절함 같은 평소의 불만이 (언제나처럼 욕설과 함께) 터져나왔지만 그런 것은 뜸사랑이 침뜸을 가져가야 하는 이유가 전혀 못 되기 때문에 제쳐놓고, 또한 뜸사랑이 아직 제도권에 들어오지 못했고 야매로 배워다가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는 한방쪽의 이야기 또한 뜸사랑이 침뜸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안 되기 때문에 역시 치우고 핵심만 짚으면 저 정도로 정리됩니다.
아, 왜 안되냐구요? 그럼 '당신들의 지적이 옳다. 앞으로 그런 것을 고치겠다. 그러니 당신들의 주장도 접어라'라고 하면 어쩔겁니까? 남의 잘못에 기대어 자기의 존재의의를 주장하는 것은 이렇게 하책중에 하책입니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논리로 자기의 주장을 완성해야만 남을 설득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 토론의 ABC지요.

여튼, 저로서는 누가 이기든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제3자로서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마리 정도는 제공해드리죠.
뜸사랑이 한방에서 침뜸을 가져오려면, 한방에서 침뜸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물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방이 뜸사랑으로부터 침뜸을 지키려면, 역시 한방에서 침뜸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당연히 한방적 원리에 의해 침뜸이 설계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뜸사랑은 한방이 저렇게 답을 한다면, 한방적 원리가 실증되었는지를 묻도록 하세요.
실증되었으면, 다시 말해 침뜸이 효과가 있는 이유를 한방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실증되었다면 뜸사랑이 침뜸을 가져올 명분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뜸사랑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물리치료를 하는 방식이나 치위생사가 치과의사의 처방을 수행하는 방식처럼 침뜸을 시술하겠다고 해야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증되지 않았다면? 이 경우 침뜸의 효과는 '효과가 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효과가 있다'가 되기 때문에, 침뜸을 가져올 근거를 획득하게 되는 거지요. 이를 바탕으로 뜸사랑은 '한방적 원리가 실증되지 않았으면 왜 그에 따른 치료를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재차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법이나 여론이 허용하고 있다'는 수준낮은 답이 나오면, '법이나 여론이 실증해주는 것이 아니잖는가'라고 일갈하면 되는 일이지요. (한방 쪽에서 저런 수준낮은 답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 일단......)

유감스럽게도 뜸사랑이나 한방 양쪽 모두 아무도 이런 의문을 품는 분들이 없더군요. 물리치료기기는 개인이 사서 써도 누구나 다 효과를 봅니다. 그 효과가 통계적으로 증명되었고, 효과가 나는 의학적 이유가 과학적으로 실증되어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침뜸은 민간에서 아직 할 수 없습니다. 한의사 분들의 전문성이 가미되어야만 (부작용 없이) 효과를 본다고 한방측이 주장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침뜸이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침뜸은 물리치료기기와 비슷하게 사용법만 익히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는 술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한방은 이 점을 보완하면 뜸사랑의 시도를 완벽하게 물리칠 수 있고, 뜸사랑은 이 점을 공격하면 한방으로부터 침뜸을 가져올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뜸사랑식 침뜸이 물리치료기기처럼 보편성을 가지는지를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검증해야지요.)

제가 보기에는 아주 쉬운 논의인데, 말싸움과 흠집내기만이 난무하며 포탈사이트 서버에 무의미한 byte를 쌓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논리적으로 말을 나누는 논쟁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글이 이상하게 길어졌군요. =_=;;;;;;

사족 :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굳이 첨언하자면, 저는 누구의 편도 드는게 아닙니다. 내심 저는 한방 쪽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게, 한의사 분들은 6년 동안 공부하면서,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의 기본원리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쓰고 계신거 아니겠습니까. 실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유만 간단히 설명하면 뜸사랑의 주장을 헛된 것으로 할 수 있으므로 더 유리한 고지에 있는 셈이죠. 이거 한방 편든다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_=;;

by 아이페오스 | 2008/11/30 19:47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핑백(2) | 덧글(17)

'한방'에 대한 검증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것에 대한 소고(小考)

'연예인 장진영씨가 한방 치료로 위암치료한다'는 기사에 줄줄이 낚인 댓글을 보고 든 잡상. 본문을 보면 분명 항암치료와 한방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나와있는데, 제목을 저렇게 뽑아놨으니 한방 치료로 위암 치료에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자의 의도가 이게 아니라면 기사를 잘 못 쓴 것이고, 만약 의도한 바가 맞다면 분명 항암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특별히 한방치료만을 부각시킬만한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려는 바는 기자의 논술실력이 아니라 댓글에서 싸우고 있는 논의되고 있는 '한방'에 대한 화두이므로, 일단 제쳐놓겠다.  

한방 쪽 사람들에게 '검증해보자'라고 말하면, '우리 치료방법에 대해 이중맹검을 실시해보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도 실제로들 그렇게 한다. 한방에 관련된 논문들 중에서 약제의 효과에 대한 논문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나, 한방에 대한 기사에 달리는 의사와 한의사, 그리고 서로 양쪽을 옹호하는 시민들간의 리플대전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지 않는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검증에 대한 다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주1)

하지만, 그런 검증은 '한방에서 쓰는 진료 tool'의 효과에 대한 검증이지, '한방적 원리(또는 사상체계)' 그 자체에 대한 검증이 아니다. 한방의 효과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방적 원리에 의해 설계된 약제와 침술 등의 진료 tool이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한방적 원리가 참인 반증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위의 주장이 참이 되려면 '약제나 침등이 정말 한방적 원리에 의해 작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약간의 회의주의를 적용하면 알 수 있다. 한방에서 사용하는 진단방법, 약제, 침 등의 진료 tool 이 정말로 한방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한방적 원리가 아니더라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가 확연해져야 한방의 진정한 효과가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2)

바로 이 점에 대해 결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방을 그 자체로 완전한 치료체계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남아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이며, 그 이유는 내가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훈련받아온,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연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방적 사상체계의 정합성 증명. 바로 이것이 한방이 미래의학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핵심적 명제이며, 이에 실패한다면 그 개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주3)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그것은 한방에 대한 편견과 적대적인 세력의 정치적 의도로 인해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폐기되어왔던 동서고금의 무수한 사유들처럼 과학적 검증에 의해 유효성을 상실한 주장이기 때문에 폐기되는 것에 불과하다.

제언 : 따라서 바로 이 점이 한방에 대한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양방과 한방의 부작용 여부'나 '양방의사들의 잘못된 행태' 등을 들면서 한방의 존재이유를 역설하려는 시도에 휘둘리고 만다. 이런 지엽적인 이슈에 일일히 대응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자기변호적인 주장을 펼 수밖에 없고, 이슈 파이팅을 걸어온 측은 바로 그 말을 부각시켜 '밥그릇 싸움'이라는 매도를 통해 반의사정서에 기대려 할 것이다.(이전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자기들 또한 밥그릇 싸움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런 논리전개가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반증해주는 것이 아님에도!!)  이러한 싸움 방식은 핵심에 대한 검증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양 직능간에 오해와 편견의 골만 키우는 비생산적인 말싸움에 불과하다. 한방적 사상체계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방과 현대의학이 접점을 찾을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주1 : 나로서는 한방적 원리에 대한 검증 이전에, 한방에서 쓰는 진료 tool 중 현대의학에서 알게 모르게 빌려간 것이 있는지의 여부부터 먼저 검증하여 순수한 한방적 치료의 치료효과를 논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지만, 그것을 제하고서라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치료효과가 있다는 말을 인정하자. 인정하더라도 그 다음 논의로 넘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또한 현대의학에서 빌려간 것 덕분에 한방치료가 더 효과적이 되었다는 반론이 있어도 상관없다. 그것은 기실 반론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치료를 위해 한방이 현대의학에 통합될 필요가 있다는 자기고백이기 때문이다.)

주2 : 나는 한방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냐면 확실하게 사상체계가 '의미없다'고 결론나지 않았으니까.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가지론자들이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 처럼 나도 한방에 대해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독교최종결전병기 리처드 도킨스가 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딱 그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한다.)  한방에서 이용하고 있는 tool이 모두 한방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판정났을 경우를 가정하여 '한방'의 테두리 안에 갇혀있던 진료 tool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 미리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전량폐기보다는, 혹독한 과학적 방법론과 회의주의의 세례를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에 한해 현대의학체계의 하나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한방적 사상체계가 진료 tool의 발전을 가로막은 요소가 있다면(사상에 의해 유용한 개념의 확장이 더뎌지는 현상은 언제나 있으므로 이 경우 또한 상정해야한다.), 현대의학체계 아래에서 더욱 발전할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일지도.  

주3 : 혹은 특정 지역의 우호도나 법적 테두리 등의 보호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다. 이 경우 특정한 나라나 문화권에서는 계속 일정한 영역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고립되거나 '그 나라의 전통 치료법' 등으로 半관광상품화된다면 '의학'이라는 이름을 걸기도 창피해지지 않을까? 나라면 내가 속해 있는 체계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의 의학은 소위 물질론과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미개한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고 있군'이라는 말을 하면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치료를 지구인에게 선사한다면, 나는 좌절감과 함께 의사면허를 내놓고 외계인의 의학을 배우려 뛰어다니게 될 것 같다. )  


사족  : '약제나 침등이 정말 한방적 원리에 의해 작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물론 과학적 방법론을 거친)을 제 깜냥으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글을 썼지만, 이것은 제가 풋사과이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이미 다 결론이 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저는 이 글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워하며, 이 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셨을 분들께 머리숙여 사과하면서 반성하겠습니다. (_ _)

by 아이페오스 | 2008/11/25 18:50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16)

화상침?

속칭 '재야의학계'라고 하는 분야에서 실적을 쌓아왔다고 하는 구당 김남수 선생을 다룬 국영방송의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한다.
집에 TV가 없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본 사람의 말이나 뉴스를 취합하면 뇌졸중에 맞는 응급 침이 있다고도 하고 화상도 침으로 낫는다고 한다. 참 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놀라운 업적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기술이 대가의 사망으로 사장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TV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에는 검증 과정이 들어있지 않은 듯 하다. (이 바닥에서 검증이란 '논문'을 말하는 건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한다.) 침 시술을 받은 환자가 그 뒤 의학적 응급처치나 화상치료 등을 받았는지 아닌지, 의학적 처치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면 그 환자의 회복기간이 자연회복기간에 비해 얼마나 짧아졌는지 등등......조금만 생각해도 논문을 만들 거리는 너무나 많이 쏟아져나온다. 논문 한 편 써본 적이 없는 나도 이 정도 생각을 하는데, 매일 논문에 파묻혀 생활하는 분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았을까.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최선의 방법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제공하는 의학적 소견을 거부할 권리는 당연 환자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방법보다 저런 방법이 탁월하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다면, 당연히 그 쪽으로 환자분을 전원시킬 것이다. 하지만 저 침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병이 나았다는 환자분들의 칭송 뿐. 그렇기 때문에 그 칭송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객관화하는 데이터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환자를 다루는데 있어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들에게 저런 침술을 추천해 줄 수 없다. TV를 통해 정보를 얻고 새로운 것을 접해보고 싶은 환자와, 그것에 대해 과학적 믿음을 가지지 못해 소개해 줄 수 없는 의사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또 멀어져간다. (=_=)

추신 : 듣기로, 구당 김남수 선생은 한의사 면허가 없고 한의학계에서도 좀 마이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위여부는 잘 모르겠음. (-_-)a

by 아이페오스 | 2008/09/14 00:00 | 막장의사의 발로쓰는 의료이야기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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